전세버스 업계, 교통사고 줄이기에 ‘안간힘’
김덕현 기자 crom@gyotongn.com
출처 : 교통신문(http://www.gyotongn.com)
지난 19일 전세버스 업계가 교통안전 캠페인을 실시한 서울 노원구의 한 공영주차장.
사고 발생건수·피해 급증...구조적 한계 극복해야
공제조합 지급여력 비율 18%까지 떨어져 고령화·부주의·규제 일변도 정책이 주요인
분담금 16년 만에 인상했지만 여전히 부족, 대도시업체들, 차고지 없어 안전 관리 고충
“정부·업계·기사 모두가 사고예방에 최선을”
오성문 전국전세버스연합회장이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 스티커를 전세버스 차량의 의자 뒤에 부착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세버스 교통사고 발생건수와 피해 규모가 크게 증가하면서 전세버스공제조합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공제조합의 지급여력비율이 18%까지 떨어지자 정부에서 “이대로라면 버스공제조합과 통합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전세버스 교통사고의 증가는 업계의 부주의와 운영 문제도 있지만, 정부의 ‘규제 만능주의’ 정책 방향과 육운업계가 겪는 구조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공제조합뿐 아니라 각 업체 대표들, 운수종사자까지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교통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의 한 공영주차장.
전국전세버스연합회와 공제조합, 서울전세버스조합이 한자리에 모여 A업체의 버스 의자 뒤에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 스티커를 붙이는 행사를 개최했다.
오성문 전국전세버스연합회장이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 스티커를 전세버스 차량의 의자 뒤에 부착하고 있다.
여느 때라면 홍보로 그칠 행사였지만, 33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 모인 참가자들의 분위기는 내내 심각했다.
A업체 대표 B씨는 “월 300만원을 맞춰줘도 경험을 쌓으면 시내·시외버스로 이직하는 일이 다반사라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며 “30~40대가 아니라 50대도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인력난에 정년이 지난 고령의 운전자를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올해 서울지역 전세버스 운수종사자의 연령대별 분포를 살펴보면 60대가 1120명으로 전체 2325명 중 48.2%를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인지능력과 반사신경이 예전만큼 못하다.
그러나 버스를 모는 기사는 자신이 운전을 시작했던 수십년 전 신체 상태가 현재도 유지된다고 생각하며 운행하기 때문에 오판을 하기 쉽다.
결국 ‘순간의 방심’은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B씨는 “지난해 1월 평소 사고도 없이 안전운전을 하던 한 기사가 앞유리에 김이 서리니 히터를 틀다가 전방을 5초간 주시하지 못해 생긴 사고로 차량 7대가 파손되고, 한 분이 돌아가셨다”며 “버스 한 대당 700~800만원의 손실부담금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업계는 기사를 구하기 어렵다며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위해 법무부 등에 취업비자 규칙 변경·신설을 건의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국토부 등 관계부처는 ▲불법체류자 증가 우려 ▲외국인 근로자 유입으로 인한 국내 노동인력의 취업시장 침해 ▲버스노조의 반대 등을 들며 외국인 운수종사자 채용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노선버스는 방송으로 정류장을 안내하고 노선표가 비치돼 있어 승객과 대화할 일이 많지 않지만, 전세버스는 특성상 승객과 대화할 한국어 능력을 갖춰야 해 외국인 근로자 채용은 전세버스 업계엔 아직 먼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체는 사고를 낸 기사를 쉽게 해고하거나 충원하지 못해 손해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방은 더 심각하다.
공제조합이 조사한 지난 2023년 기준 사고율 50% 초과 업체는 전국적으로 541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업체에서 발생한 사고는 전체 전세버스 사고의 37%를 차지했으나 손해액은 전체액의 62%를 차지했다.
일부 업체가 계속해서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반복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얘기다.
특히 사고가 많은 전국 10개 업체를 집계한 결과 경기도가 4곳으로 가장 많았고, 한 지역은 1700%가 넘는 손해율을 기록한 업체까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자는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공제조합은 올해 적자 규모가 600억원이 넘어서자 신규 가입 계약 기준으로 버스 한 대당 연간 기본분담금을 230만원에서 285만원 수준으로 올렸다.
이것도 국토부가 “대당 80만원을 인상하라”고 지시한 것을 업계가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해 합의를 본 결과다.
이는 공제조합이 2008년 이후 15년 넘게 분담금 인상을 미룬 탓이 크다.
각 시도 조합 이사장이 당연직 운영위원으로 공제조합 운영에 참여하면서 부담을 줄이고자 인상을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마을버스가 대당 800만원, 법인택시가 대당 400만원 이상을 기준으로 기본분담금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전세버스는 사고건수와 사고 규모에 비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사고 다발업체에 대한 범위요율 적용 범위를 강화해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요구하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전세버스를 운행하려면 교통안전법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운행기록장치(DTG)와 차로이탈경고장치·비상자동제동장치 등 첨단안전장치, 영상기록장치 등을 장착해야 할 뿐 아니라 운수종사자의 음주측정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 등 특·광역시에서 사업을 하는 전세버스 업체는 업체별 등록기준인 20대 이상을 한곳에 주차할 차고지가 없다.
차고지를 갖춘 시내·마을버스와 달리 전세버스는 흩어져 있어 기사들의 음주측정을 하려면 통신 기능을 갖춘 기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인력과 통신비 등 추가 비용 부담은 모두 사업자의 몫이다.
한 전세버스 업계 관계자는 “각종 규제를 만들었으니 무조건 따르면 된다는 면피성 발상”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전담 인력과 유지보수 등의 추가 비용 문제를 현실적으로 지원해야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버스공제조합과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가, 지난해 위기를 극복한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 서울지부의 사례는 참고로 삼을 만하다.
개인택시공제조합 서울지부도 지난 2020년 초 3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해 ‘공제사업정지’에 해당하는 경영개선 명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서울지부의 지급여력비율은 -90%에 달했다.
경영 부실의 원인으로는 ▲보험료 조정 방치 ▲리더십 및 직원 교육 미흡 ▲관리자 교체 부재 ▲전문성 부족 ▲보상 서비스 부족 ▲인사 적체 및 근무환경 열악 등이 지적됐다.
전세버스 실내 앞유리에 차량 내 음주가무행위 금지 안내문과 위반 시 처분 내용이 붙어 있다.
전세버스 실내 앞유리에 차량 내 음주가무행위 금지 안내문과 위반 시 처분 내용이 붙어 있다.
서울지부는 위기를 벗어나고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서비스 개선 등 강도 높은 경영 자구책을 진행했다.
보험료는 코로나19 시기에도 매년 인상했으며, 소송전문팀과 외제차 보상전문팀, 구상전문팀을 신설해 전문성을 확보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태만한 관리자는 매년 교체하며 인사 적체도 해소했다.
지역센터의 근무환경을 금융권 수준으로 높이고, 전화 수신 담당 직원도 충원했다.
그 결과 서울지부는 경영 정상화 척도인 지급여력비율 105%, 자체 보유자금 550억원대, 보험 조정율 5% 이하, 수입보험료 약 910억원, 손해보험사 대비 보험료를 75% 수준으로 유지하며 지난해 9월 ‘경영 정상화’를 선언했다.
현재 전세버스공제조합과 연합회는 교통사고 예방과 감소를 위해 손해율이 높은 업체를 찾아다니며 대표자 면담과 방문 교육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공제조합은 사업주와 기사의 의식 개선과 경각심 제고를 위해 어떤 현장이라도 찾아다니며 교육과 홍보활동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임동규 전국전세버스공제조합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공제조합의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어 ‘서로 십시일반한다’는 노력이 필요하다. 3~4년 후 재정 건전화가 목표”라며 “교통사고는 예방이 최선이다. 업체들이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갖출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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